중국하면 떠오르는 스포츠? 바로 탁구

차이나

중국하면 떠오르는 스포츠? 바로 탁구

 

중국하면 가장먼저 어떤 스포츠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 탁구를 생각하실텐데요. 세계 탁구대회에서 중국선수들이 메달이나 상위권을 휩쓰는것을 쉽게 보실 수 있으셨을거에요. 오늘은 중국이 탁구강국이 된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릴까 합니다. 

 

 

각 스포츠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나라가 있는데요. 대한민국 하면 태권도가 떠오르고 농구는 미국을 생각하게 되죠. 그것처럼 중국하면 떠오르는 스포츠가 바로 탁구랍니다. 탁구는 중국의 국기이기도 하죠. 그렇다보니 어려서부터 많은 아이들이 자연스레 탁구를 접하고 배우게 된답니다. 그렇다보니 등록된 선수만해도 몇천만명이 넘어간다고 하죠. 


중국과 한국은 올림픽 단체전에서 4차례 만나서 중국이 4전 전승을 하였습니다. 올림픽이외에도 남자 단체전 상대전적에서 중국이 절대 우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 도쿄올림픽에서 탁구 여자단식 금메달을 중국이 차지하게 되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여자단식 9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였습니다.

 

중국은 서울올림픽대회 때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탁구종목에 걸린 금메달 32개중 28개를 차지하게 되었죠. 이외에도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남녀단체전이 도입되었는데요. 중국은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3회 연속 전 종목을 석권하였습니다.



그러면 중국은 탁구를 어떻게 이렇게 잘하게 되었을까요? 탁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19세기말 영국에서 시작된 스포츠입니다. 중국에 전해진것은 20세기 초였죠. 중국에서 탁구가 전해진뒤 빠르게 퍼져나가게된 이유는 바로 탁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많은 돈이 들지 않고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퍼져나간 탁구는 전쟁중에도 계속 되었는데요. 공산당군은 여가시간에 종종 탁구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탁구를 즐김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전쟁에서 싸워나갈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공산당은 국민당에 쫓겨 근거지를 옮기기 까지 했지만 전세를 역전시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도 다양한 운동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많이 보내게 되었는데요. 그때 용국단이라는 탁구선수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용국단이 중국 국가대표로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우승을 하고 힘든시기 국민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는데요. 

대한민국도 90년대 말 IMF를 겪게 될때 골프선수 박세리와 야구선수 박찬호가 힘든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고 큰 위로가 되어주었죠. 이처럼 스포츠는 저하된 국민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냉전시대에도 중국은 미국과도 탁구를 통하여 중미 수교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요. 이를 통해서 중국은 국제적 고립을 피할수 있었으며 중국은 소련을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핑퐁외교로 불렀으며 스포츠를 통한 성공적 외교사례로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역사 매 순간에 탁구가 곁에 있으면서 국민들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중국의 국민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탁구를 즐기는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쉽고 편하게 탁구를 즐길 수 있다보니 중국에는 등록된 탁구 선수만 3000만명이 넘어가고 2000명 이상을 엘리트선수로 육성하는 탁구 학교만 10개가 넘어가며 어렸을때부터 체계적인 탁구 교육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면타법이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끊임없는 탁구 기술을 개발하고 최근에는 힘까지 겸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인구가 탁구를 하는만큼 중국의 탁구 국가대표가 되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하죠. 그래서 인지 타 국가로 귀화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합니다. 

 

도쿄올림픽 탁구선수 161명중 20명이 중국태생이라고 하는데요. 대한민국 국가대표중에서도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중국선수가출전하였습니다. 

이처럼 중국이 탁구에서 만리장성, 철옹성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요. 이런 만리장성과 철옹성이라 불리우는 중국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지금도 많은 탁구인들이 훈련을 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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